감정가는 법원이 정해 준 정답이 아니라 몇 달 전에 찍어 둔 사진이다. 시장이 움직이는 구간에서는 그 사진과 오늘의 거리를 재는 사람이 이긴다.
경매 법정 앞에서 수강생들에게 가장 자주 듣는 말이 있다. “감정가보다 싸게 썼으니 남는 장사죠?” 그럴 때마다 나는 되묻는다. “그 감정가는 언제 찍은 사진입니까?”
감정가는 몇 달 전에 찍은 사진이다
경매가 시작되면 법원은 감정인에게 평가를 맡긴다. 평가가 끝나고 첫 매각기일이 잡히기까지 보통 몇 달이 걸린다. 한두 번 유찰되면 더 길어진다. 입찰자가 보는 감정가는 길게는 1년 가까이 묵은 가격일 수 있다는 얘기다.
집값이 오르는 구간에서는 이 시차가 입찰자에게 선물이 된다. 감정가가 지금 시세보다 낮으니 감정가를 넘겨 써도 시세보다 싸게 살 수 있다. 반대로 집값이 꺾이는 구간에서는 시차가 함정이 된다. 감정가가 시세보다 높아져, 감정가의 90%에 낙찰받고도 급매보다 비싸게 사는 일이 생긴다.
지금 서울에는 두 장의 사진이 겹쳐 있다
요즘 서울이 딱 그렇다. 한쪽에서는 소형 아파트가 감정가의 110%를 넘겨 낙찰되고, 다른 쪽에서는 고가 아파트가 감정가의 70% 안팎에서 겨우 주인을 찾는다. 같은 서울, 같은 계절인데 감정가라는 사진과 현재 시세 사이의 거리가 지역마다, 가격대마다 다르게 벌어져 있기 때문이다.
이런 시기에 ‘감정가 대비 몇 %’라는 숫자만 보고 입찰하는 것은 지난달 일기예보를 보고 우산을 챙기는 것과 같다. 입찰가의 기준은 감정가가 아니라 오늘의 실거래가와 급매 호가여야 한다.
4차원의 세계에서는 시간도 계산한다
나는 법원경매를 “매달 가격이 떨어지는 4차원의 세계”라고 부른다. 유찰될 때마다 최저가가 내려가기 때문이다. 서울 지역 법원은 대부분 한 번에 20%씩 낮춘다. 일반 시장에는 없는 시간의 축이 경매에는 있다.
집값이 꺾이는 구간에서 이 축은 더 힘을 낸다. 일반 시장의 집주인은 호가를 쉽게 내리지 않지만, 경매의 최저가는 정해진 규칙대로 내려간다. 감정가가 시세보다 높게 잡힌 물건이라도 한두 번 유찰되면 시세 아래로 내려오는 순간이 온다. 그 순간을 기다릴 줄 아는 사람에게 하락기는 위기가 아니라 기회다. 내가 “법원경매는 불황일수록 더 빛난다”고 말하는 이유다.
입찰 전에 던져야 할 세 가지 질문
첫째, 이 감정가는 언제 기준인가. 감정평가서의 가격 시점을 확인하고, 그 뒤 해당 단지의 실거래가가 어떻게 움직였는지 비교하라.
둘째, 지금 이 단지에서 가장 싼 매물은 얼마인가. 경매 물건의 진짜 경쟁자는 옆자리 입찰자가 아니라 같은 단지의 급매다.
셋째, 한 번 더 유찰되면 최저가는 얼마가 되는가. 기다림의 값어치를 숫자로 계산해 보면 서두를 이유가 사라지는 경우가 많다.
경매는 싸게 사는 기술이 아니라 정확하게 사는 기술이다. 감정가라는 오래된 사진을 내려놓고 오늘의 시장을 다시 찍어 보는 사람만이 도매시장의 가격으로 집을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