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NPL(부실채권)이란?
쉽게 말해 은행이 돈을 빌려주고 3개월 이상 이자를 못 받아 '마이너스 딱지'가 붙은 대출 채권입니다. 은행은 이 채권을 경매 시장에 넘겨 집을 팔아 돈을 회수하는데, 투자자가 이 '경매 넘어갈 채권'을 은행에서 미리 싸게 사서 낙찰금으로 차익을 노리는 것이 NPL 투자입니다.
"대문 잠그니 담장을 넘었다"… 10년 만에 부활한 우회 투자의 유혹
"개인은 NPL 직접 못 삽니다. 하지만 걱정 마세요. 수강생 3~4명 모아서 자본금 5천만 원짜리 법인 하나 만들면 됩니다. 우리가 서류부터 채권 가져오는 것까지 다 해드립니다."
지난주 기자가 잠입한 서울 강남의 한 대형 경매학원 유료 특강선 강사의 목소리가 뜨거웠다. 강의실을 가득 채운 80여 명의 수강생은 영끌 투자 실패로 벼랑 끝에 몰린 30대 직장인부터 은퇴 자금을 지키려는 60대 장년층까지 다양했다.
지난 2016년 대부업법이 개정되면서 개인 투자자가 은행에서 직접 NPL 채권을 사 오는 이른바 '론세일(Loan Sale)' 방식은 법으로 엄격히 금지됐다. 무분별한 채권 추심과 서민 피해를 막기 위한 조치였다.
하지만 금융당국이 '대문'을 잠그자, 사설 경매학원과 일부 유튜버들은 법망을 피하는 '담장'을 만들어냈다. 바로 ‘유령 대부법인(페이퍼컴퍼니)’과 ‘대위변제(대리 빚갚기)’라는 이름의 우회로다.
[현장 고발] "안전한 소액 투자"?… 실상은 '폭탄 돌리기'
현장에서 일어나는 편법의 실태는 정교하고 과감했다.
첫째는 ‘유령 대부법인 만들기’다. 학원 측은 개인 매입이 막히자 수강생 수인에게 자금을 모으게 한 뒤 지자체에 등록하는 소규모 대부법인을 만들도록 유도한다. 이름만 대부업체일 뿐, 오직 특정 NPL 채권을 사 오기 위해 만들어진 페이퍼컴퍼니에 불과하다.
둘째는 ‘대위변제’의 악용이다. 은행에서 채권을 직접 사 올 수 없으니, 경매로 넘어간 집주인(채무자)에게 접근해 "우리가 빚을 대신 갚아줄 테니, 근저당권(집을 담보로 잡을 권리)을 우리에게 넘기라"고 계약을 체결한다. 원래는 채무자를 구제하기 위한 민법상 제도인데, 이를 경매학원이 NPL 편법 매입의 우회 수단으로 탈바꿈시킨 것이다.
셋째는 가장 위험한 ‘질권대출 쪼개기’다. 학원 원장이나 대표 강사가 본인 명의(혹은 본인 소유 대부업체)로 NPL 채권을 통째로 사 온 뒤, 수강생 수십 명에게 "이 채권에 근저당권 질권(채권을 담보로 잡는 권리)을 걸어줄 테니 1천만 원, 2천만 원씩 투자하라"고 모금한다. 이는 금융당국의 인가를 받지 않고 다수인에게 자금을 모으는 ‘유사수신 행위’에 해당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피해 사례] "원금 보장된다더니…" 유찰 폭탄에 날아간 은퇴 자금
그렇다면 이들의 말대로 NPL 우회 투자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일까. 현장에서 만난 피해자들의 현실은 잔혹했다.
퇴직금 1억 5천만 원을 학원 권유로 NPL 법인 우회 투자에 넣었던 60대 김 모 씨는 현재 밤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학원에서는 경매가 넘어가면 1순위로 배당을 받기 때문에 절대로 원금을 잃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경매가 진행되니 부동산 경기 침체와 대출규제로 집값이 폭락해 3차례나 유찰됐습니다. 유치권까지 튀어나오면서 예상 배당금이 반토막 났고, 대출 이자만 매달 나가고 있습니다. 원금은커녕 길거리에 나앉게 생겼습니다."
NPL 투자의 핵심은 '채권에 설정된 담보 가치'다. 하지만 최근 수년간 지속된 부동산 경기 침체로 학원 측이 장담했던 배당금은 고사하고 채권 자체가 '고철 덩어리'로 전락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심리 분석] 서민들은 왜 경매학원의 '가스라이팅'에 속았나
부동산 시장이 얼어붙고 금리가 높은 상황에서, 왜 수많은 서민과 영끌족들은 이 위험천만한 편법 NPL에 빠져들었을까. 필자는 이를 ‘절박함을 노린 정교한 가스라이팅’으로 분석한다.
최근 전세사기 여파나 영끌 실패로 자산 손실을 입은 서민들에게 경매학원은 이렇게 속삭인다. "일반 경매는 경쟁이 세서 돈 못 법니다. 하지만 NPL은 남들이 못 들어오는 '비밀 시장'입니다. 은행 담보가 잡혀 있으니 원금은 100% 보장되고, 연 15~20% 수익이 나옵니다."
'원금 보장'과 '고수익'이라는 말도 안 되는 이율배속의 거짓말이, 절박한 투자자들의 이성을 마비시킨 것이다. 세상에 ‘고수익이면서 원금이 보장되는 투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편법의 끝은 불법, 법원표 경매표 찍기 전에 자금 성격부터 짚어라"
경매 투자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내가 모르는 위험'이 아니라 '위험을 안전하다고 믿는 착각'이다.
개인 투자자가 편법으로 유령 대부법인을 세우거나 질권 쪼개기에 가담하는 순간, 이는 단순한 투자 실패를 넘어 법적 처벌(무등록 대부업, 유사수신행위 처벌법 위반) 대상이 될 수 있다.
경매 시장에 쏟아져 나오는 NPL 물량은 분명 기회일 수 있다. 그러나 편법과 꼼수로 포장된 '깜깜이 NPL'은 투자자를 벼랑 끝으로 미는 악마의 유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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